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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정신적인 감성지능 중에 하나가 믿음(신념)일 것이다. <<신념의 마법>>이라는 책이 있듯이 믿음은 우리에게 마법과 같은 작용을 한다고 여길 정도로 사람을 자극하여 특정의 결과를 얻는 중요한 동기요소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한 차원 깊게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왜 더욱더 강한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할까? 그것은 자신의 믿음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에 기인한다고 본다. 0.1%의 불신이라도 믿음의 뒤편에 자리 잡고 있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더욱 불태워 완벽한 믿음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반적으로 하는 우리들의 대부분의 반복적인 기도가 이렇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물론 기도하지 말라거나 신앙 생활에 대하여 부정의 의미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완성은 무엇일까?

 
믿음의 완성은 바로 명료함이다. 우리의 내면에서 떠오르는 그 명료함은 믿음의 완성이다.

 

얼마 전 한 교육장에서 대단한 실행력을 가지고 있는 한 분을 만났다. 아는 것, 계획 한 것을 사람들은 왜 실천하지 못할까? 하는 오랜 세월 가지고 있던 나의 궁금증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교수님은 실행력이 대단하신 것 같은데요 마음속의 생각을 그렇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그 분은 머뭇거림 없이 곧 바로 답변해 주셨다.

저는 일단 어떤 계획이 생기면 그 다음부터는 아무 생각 안 합니다. 그냥 실천합니다.”

그 분이 말씀하신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은 바로 명료함이었다. 강력한 실행력의 배경에 명료함이 있었던 것이다.

~ Drip -
~ Drip - "?" ~ by ViaMoi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믿음과 신념은 우리에게 인내와 노력이라는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믿음을 가지고 애써 노력하는 것 이다. 그리고 현실 앞에 맞닥뜨리는 시련과 문제들을 인내와 더욱 강한 믿음으로 극복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명료함은 우리를 Flow의 상태에 도달하게 해준다. , 우리를 자연이 가지고 있는 안정의 상태에서 자신이 소유한 주제(소망)는 마땅히 그러해야만 하는 당위의 명제가 되어버린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우주의 진리와 같이 당위성을 가지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강한 믿음도 인내와 노력 등 이러한 수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그냥 자연의 법칙이다. 그렇게 되어지기로 한, 신과 우주와의 약속이고 나는 그 약속이 진행되는 과정에 놓인 경험을 하는 자이다. 믿음은 진행되는 과정에 스스로의 잣대를 가지고 여러 상황 속에 변질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과정이 어떠하던 모든 것을 수용하고 포용하는 것은 바로 명료함이다.

좀 더 심오하게 생각해 보면 명료함은 어떤 일을 하는데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집중력을 가져온다. 불신(不信)과 군더더기의 잡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가장 큰 집중을 할 수 있고 극에 달하는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다. 이 부분을 부연설명하기 위해서 사카모토 마사미치가 저술한 <<초의식>>중에 몇 부분을 인용해본다.


궁도()의 명수는 과녁을 겨냥할 때 우선 무심이 되고 자신의 마음과 과녁, 대우주가 하나가 되도록 한다. 이러한 상태가 되면 암흑 속에서도 명중시킬 수 있다. 여기서 소망실현의 극의를 엿볼 수 있다. , 소망을 실현시키고 싶다면 무심의 경지에 이르러 실현하려는 소망과 일체가 되어야 한다.”


노리지 말라. 과녁도, 명중도 그 외 어떤 무엇도 생각하지 마라. 활을 당기고 화살이 떨어져 나가기를 기다려라. 그러면 모두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해준다.”


내가 하는 방법을 잘 보았는가. 명상에 잠긴 부처처럼 눈을 거의 감고 있는 상태를 보았는가. 나는 과녁이 점점 작아져 사라질 때까지 눈을 감는다. 그러면 과녁은 내 쪽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과녁은 나와 일체가 된다. 이 상태는 마음을 깊이 가지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이다. 과녁이 나와 일체가 되면 그 상태는 내가 부처와 일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는 자연의 일부이다. 그 일부가 하는행위가 아니라 자연 전체가 할 때 된다가 된다. 그래서 우주와 일체가 된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우주와 일체가 되고 과녁과 일체가 될 때 자연에 화살을 풀어주고 거기서 표적 한가운데에 다다르도록 한다. 여기에는 일체의 작위는 없다.”


아래의 글은 명료함를 어떻게 느끼는가를 나타내주고 있다.


소망과 일체가 된 자신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는 상태가 아니라 보인다혹은 느껴진다라고 표현해야 옳다. 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느낌으로 거기에 보인다. 그 느낌을 체험하고 있는 자신이 느껴지는 상태이다. 이 경우는 의도적으로 이러한 상태를 연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의도적이라는 의미는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무심은 여기에 자신의 마음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무심이다.”

믿음은 자신의 의도적인 의지를 나타내고 명료함은 바로 이 무심의 상태에서 드러나는 자연의 현상이라 볼 수 있다.

Arrow and Target
Arrow and Target by Matthew McVicka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이 궁도의 달인이 사라진 과녁을 자신 쪽으로 다가오게 하고 급기야 과녁과 자신이 일체가 된 것, 더 나아가 신과 합일이 된 상태가 명료함의 실체적 표현이라 생각한다.
대상과 나 그리고 신과의 합일이 된 부동의 중심상태가 명료함인 것이다.
이때 무슨 일을 못 이루겠는가?

물아일체속에서 활의 시위를 당기는 활의 명수와 같이 진정한 내려놓음의 경지에 이르게 해주는 것은 바로 명료함이다. 명료함은 우리의 목표를 잊되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Self2 Flow 상태에 놓이게 만든다. <Self2 Flow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신 분은 Gallwey, W. Timothy<<이너게임Inner Game>>을 참고하세요.>

명료함은 내려놓음, 호오포노포노의 원리와 함께 생각해 보아도 좋은 통찰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9시경 스승을 찾았더니 스승은 집 옆의 도장으로 헤리겔(독일철학자,<<일본의 궁술>>의 저자)을 데리고 갔다. 스승은 가늘고 긴 모기향에 불을 붙여서 과녁의 앞에 세웠다. 그리고 활을 쏘는 위치까지 되돌아온다. 과녁은 깜깜한 어둠 속의 모기향의 미세하게 빛나는 한 점일 뿐이어서 있는지 없는 지도 알기 어려울 정도이다. 스승은 활과 화살 2개를 집어 제1의 화살을 발사했다. 스승은 헤리겔에게 화살을 바꾸게 했다. 1의 화살은 보기 좋게 명중하였고 제2의 화살은 제1의 화살의 뒤에 꽂혀 그것을 가르고 있었다.”

 

명료함 그 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닌 신성의 메시지다.

 

당신은 지금 어떤 명료함을 가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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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우철(belizion) 벨리션


자연이야말로 가장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외감의 대상이다.
번잡스런 것을 피해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이 들때는 늘 멋진 자연 속에서 사는 꿈을 꾼다.
산이나 숲, 섬, 바닷가, 호숫가 같은 곳에서 사는 꿈을 꾼다.
우리는 자연에서 왔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은 우리와 같은 근원에서 왔으며 우리는 자연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 욕구를 느낀다.

Urmia Salt Lake / دریاچه ی نمک ارومیه
Urmia Salt Lake / دریاچه ی نمک ارومیه by Mehrad.HM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영감을 느끼면서 단순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가 점점 커지는 것은 바로 우리의 본래 자아, 즉 자연의 자아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과 함게 하는 시간을 가져라. 멀리 떠나 숲속을 걷거나 야영을 하고 강이나 호수, 바다에서 수영을 하라. 야외의 장작불 옆에 앉거나 오솔길을 따라 말을 타고 가며, 스키를 타고 산의 비탈길을 미끄러져 내려오라. 현재 사는 곳이 어디이든 몇분 만의 시간을 내면 당신이 자연과 연결되는 느낌을 맛 볼 수 있다. 당신은 자연과 하나이다.
- 웨인 다이어 -


오늘 하루 자연과 함께 하는 나 , 자연 속의 나를 느껴 봅시다.
자연과 하나됨을 체험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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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우철(belizion) 벨리션

 그대의 현재의 의식에 주의를 기울여라. 그대의 의식속에 떠오르는 것들에 주목하라. 그대의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생각들, 그대의 몸에 떠오르는 느낌과 감각, 그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나타나는 수 많은 대상들에게 주의를 기울여라. 이 모든 것이 그대의 의식에서 떠오르고 있는 대상들이다.

 이제 5분 전에 그대의 의식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라. 대부분의 생각, 대부분의 몸의 감각,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환경이 바뀌었을 것이다. 5분전에도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이다. '나'라는 느낌, '나'라는 의식이 아직 그대로 있다. '나'는 영원히 존재하는 바로 그 '나'이다. 그 '나'가 지금 현존하고 있으며, 바로 전 순간에도 있었고, 1분 전에도 있었으며, 5분 전에도 있었다.

 5시간 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나'이다. 스스로 자기를 알고, 스스로 자기를 인지하며, 스스로 자기임을 확인하는 그 '나'라는 느낌이 5시간 전에도 있었다. 5시간전에 있던 그것이 지금도 현존한다. 생각은 다 바뀌었고, 몸의 감각도 모두 바뀌었으며, 환경도 바뀌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있다. 빛나고, 열러 있고, 비어 있고, 깨끗하고, 광대하고, 투명한 '나'가 늘 현존하고 있다. 대상은 모두 바뀌었다. 그러나 형상이 없는 '나'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이 명백하게 현존하는 '나'가 5시간 전에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있다.

 5년 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나'이다. 많은 것이 왔다 갔다. 수많은 느낌이 왔다가 갔다. 수 많은 생각이 왓다가 갔다. 수 만은 극적인 사건, 두려움, 사랑, 증오가 와서 잠시 머물다 갔다. 그러나 오지도 가지도 않은 것이 딱 하나 있다. 그게 무엇인가? 그대의 의식 속에 5년 전에도 있었는데 지금도 그대로 있는 구 하나가 무엇인가?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현존하는 '나'라는 느낌이 그것이다. 그것이 5년 전에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있다.

 5세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언제나 현존하는 것은 '나'이다. 모든 사람이 이 동일한 '나'를 느낀다. 이 '나'는 몸이 아니다. 생각도 아니고, 대상도 아니고, 환경도 아니다. 이 '나'는 보이는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나'는 영원히 현존하는 '보는 자'이다. 일어나는 모든 것을 주시하는 비어 있는 목격자이다. 어떤 사람들에게서, 어떤 세상에서, 어떤 곳에서, 언제 일어나는 일이든지 모두 지켜보는 목격자이다. 시간이 끝날 때까지 모든 것을 지켜보는 목격자이다. 늘 지켜보고 있는 이 '나'만이 유일하게 늘 현존한다. 스스로 자기를 알고, 스스로 자기를 느끼고, 스스로 자기를 초월하는 이 밝은 '나'만이 늘 현존한다. 이 '나'가 지금도 있고, 5분전에도 있었고, 5시간 전에도 있었고, 5세기 전에도 있었다.

 5천 년 전에는?

 아므라함이 있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 우주가 탄생하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 이것이 나의 본래면목이다. 나는 부모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도, 우주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다. 이 '나'가 스스로 창조한 대상들 속에 자신을 숨기고 그것을 찾는 게임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이제 다시는 이 '나'를 모르는 척하지 않으리라. 이제 다시는 이 '나'를 느낄 수 없는 척하지 않으리라.
 
 이제 숨박꼭질 게임은 끝났다. 수많은 생각이 왔다가 갔다. 수많은 느낌이 왔다가 갔다. 수많은 대상이 왔다가 갔다. 그러나 오지도 않고 가지고 않는 것이 하아 있다.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것, 시간이 흐름 속으로 결코 들어오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는 것, 시간을 넘어선 순수한 현존, 영원을 거니는 것이 곧 그것이다. 내가 이 위대하고, 명잭하고, 스스로 자기를 알고, 스스로 자기임을 확인하며, 스스로 자기를 해방시키는 '나'이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

 '스스로 있는 나 (I AM)'가 곧 1인칭 영(Spirit), 궁극적인 존재, 장엄한 존재, 모든 것을 창조하고 있는 온 우주의 빛나는 참자아이다. 모든 사람이 누구나 그 '나'를 느낀다. 그 '나'가 나와 너와 그와 그들 안에 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 우주의 수많은 존재들의 '나'를 모두 합해도 그 수(數)는 1일 뿐이다.

 항상 지금 그대가 느기고 있는 바로 그 '나임(I AMness)'에 머물러라. 그것은 그대 안에서 그리고 그대로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태어나지 않은 영이다., 상황에 따라 그대의 모습을 다양하게 연출하라. 그러나 늘 모든 것의 근거에 머물도록 하라. 완전히 명백한 '나임'상태에 머물면서, 그 '나'가 창조한 세상에서 그대의 몫을 살아라.

 이제 새로운 아침이고, 새날이고, 새 사람이다.
새로운 인간은 통합적이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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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경해부학자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을 해줍니다.


모든 것은 에너지이다.

모든 것은 하나이다.

깨달음(해탈/니르바나)을 과학적으로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뒷 부분에 좋은 내용이 많이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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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w fo Attraction, 끌계장의 작동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비유입니다.
같은 에너지장 안에서 서로 다른 것들이 동조되는 현상을 실험한 것입니다.



조금더 발전해서 생각해 보면

위에 있는 메트로놈(5개)                                     근본 베이스 (can과 널판지)

     의식, 지식/경험,                  <----------->       무의식, 잠재의식
개발된 특성, 보여지는 것(언행)   <----------->       본질/본성, 성품
          현       상                      <----------->           원     인
          외       면                      <----------->           내     면


이렇게 관련지어 성찰해 보시면 많은 앎이 있을 것입니다.

Everything is Energy!
Everything is On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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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우철(belizion) 벨리션
티머시 골웨이의 <<Inner Game>>을 근거로 정리

이너게임 : 자신의 실체 즉 타고난 잠재역량을 발휘하기 위한, 우리 내부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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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그림을 보시면 2가지 종류의 시간대비 성과곡선이다.
어떤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을 때 우리는 B와 같은 지속적이고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까
이 물음에 해답을 확인 하시기 전에 잠시 여러분들이 어떤 상태에서 업무나 일을 진행했을 때 가장 좋은 효과를 내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대부분의 경우 업무나 일에 몰입했을 때 결과가 훌륭하게 나왔을 것이다. 그럼 한 단계 더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 몰입이 잘 될까? 몰입과 관련된 요소들은 많겠지만  몰입의 주된 방향을 외부와 내부로 나누어 보겠다. 우선 외적인 방향이다. 즉 결과 지향 또는 외부의 환경과 반응들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하고 이에 따라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을 삼는다. 다른 하나  내적인 방향은 외부 현실과 반대되는 과정에 대한 충실을 의미한다. 이것만으로 외부환경의 몰입보다는 내적인 몰입이 탁퉐하고 올바르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 <<Inner Game>>의 저자 티모시골웨이는 외부에 집착하는 현상을 Self1focus 라고 하고 내면을 지향하는 올바른 집중을 Self2focus라고 한다.
 Self1은 외부 환경에 집중, 목표와 결과에 집착하는 하는 것으로 이러한 현상은 일이 진행되는 과정 동안에 나타나는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나 예상박의 문제, 시련들에 부담감이나 압박감을 느껴 자신감의 감퇴, 의욕상실등을 거쳐 급기야  중도에 좌절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반면 Self2는 그 지향점이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에 있지 않다. 즉 현실에 충실하지만 목표에 집착한 나머지 현실의 상황에 흐트러지는 것이 아니라 무던히 과정에 충실하며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그래프에서 말하듯이 Self1의 처음에 가지고 있는 열의와 집중은 초기성과를 가져 올 수 있지만,결국 Self2에 집중하는 것이 과정상에 오는 어떤 문제나 시련에 충격 받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인내심과 변함 없는 지속적인 수행에 의해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때 우리는 실수가 없어지고 자신의 능력을 100%발휘할 수 있다. 즉 현실의 결과 이상의 어떠한 만족과 성취감을 얻어가면서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연약하고 성취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감정이라는 내면의 적을 스스로 물리치고 자신의 잠재력을 100%발휘할 수 있는 몰입(Flow)의 상태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된다. 자연스러운 가운데 행해지는 동작과 일들에는 부화가 걸리지 않는다 그 과정에는 실수가 없고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지만 감정과 집착에 치우친 상태에서는 실수와 부담등 심리적인 악역향으로 자신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능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우리 내면의 Self1 Self2Game에서 Self2가 승리했을 때 우리는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여 가장 자연스럽고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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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lf1focus, Slef2focus의 예를 들어보자. 특정 물건을 판매하는 영업사원이 있다. 이 직원은 최근
전반적인 국내외 불황으로 인한 시장의 경기악화, 와 메스컴의 부정적인 각종 뉴스를 접하고 있다. 그리고 영업실적이 반드시 좋아야 한다는 결과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현실 상황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 책임량 달성미달, 팀실적 최하위, 팀장의 문책,.. 이런 내외부적인 요인으로 당연히 부담감과 압박감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자신감이 떨어지고 만다. 의욕이 상실되며 급기야 '원래 난 영업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체질이 이야이런 상태에 빠져든 자에게 좋은 영업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내외부적 상황에서도 눈앞의 판매계약체결이라는 목표를 잠시 잊고, 1일 고객 미팅수 늘려가기, 미팅의 질 높이기, 계약으로 성사되지 않아도 긍정적인 고객 비율 늘리기, 고객과의 통화건수 늘리기(이러한 것을 핵심변수라 한다.)등 목표 보다는 과정의 수행에 집중, 학습과 성장, 즐거움의 관점으로 진행, 과정에 충실할 때 불황이라는 대 내외적인 상황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런 상황과 문제점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주어진 과정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때 그의 노력들은 효과를 가져오고 빛을 바라게 될것이다. 
 
 독서하는데 있어서도 같은 원리를 적용해 볼 수 있다. Self1은 말한다. 책이 너무 두껍다. 내용이 어렵겠는데, 읽으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겠다. 글씨체가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이네. 난 원래 바뻐. 하지만 우리는 Self2(핵심변수)에 집중할 수 있다. 학습과 성장 즐거움의 과 함께, 이 책이 나에게 주는 이로움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고 이런 식()에 활용을 해야겠다. 라는 정의만으로 우리는 책을 읽는 시간이 즐겁고 집중이 더욱 잘되며, 속독법을 배우지 않아도 효과적인 독서를 할 수 있게 된다.

 

Self2에 집중하는 방법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1)
Self1(부정적 감정)이 근본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한다.(고도의 내공 필요)
2)  Self1을 무시한다.
3)  Self1을 인식하고 수용한다. (Self1을 인식하지만 매몰되지 않고 self2에 집중)

이 세가지 방법 중에 당연히 1)의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훈련되지 않은 일반인들의 마인드 컨트롤 능력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2)3)을 주로 사용하실 수 있는데 2)번 보다는 3)번의 방법을 권장한다.
Self2에 집중하는 것이 처음부터 쉽지 않다고 하실 수 도 있겠지만 관련된 개념을 이해하고 핵심변수를 잘 인식하여 Self2focus 를 학습과 즐거움을 동반하여 실행한다면 여러분의 업무와 일은 즐거움이 따라오고 과정과 만족도는 날로 행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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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acy Question

내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업무 중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 업무는 무엇인가?

그 업무에 핵심변수들은 무엇이 있을까?

난 그 핵심변수를 어떤 즐거움과 학습의 관점으로 연결 수 있을까?

타인에게 업무위임 시에 업무와 함께 즐거움과 성장(학습)의 의미를 함께 부여할 방법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 어떤 즐거움을 가질 수 있을 까?

나의 업무를 어떤 식(관점)으로 진행할 때 내 자신의 성장을 위한 학습의 효과를 가져올까?




단계1의 Self2focus

  • 자신의 부정적 감정, 외부상황(악재)을 극복(무시)하는 것
  • 긍정의 Mind로 목표에 정진
  • 현재 인식하고 있는 능력(역량)을 발휘

단계2의 Self2focus

  • 부정적 상황과 감정을 참는 것(Tolerating)이 아니라 수용(Allowing)하는 것
  • 긍정의 끌어당김, 순수의도에 집중하는 것
  • 소유하고 있는 잠재능력 발휘(Good)

단계3의 Self2focus

  • 진정한 내려놓음 : 자신의 관점 마져 모두 내려놓고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관찰
  • 성장과 자연의 순수 상태
  • 긍정과 부정, 산과 악 등 이원성의 사고를 초월한 상태
  • 순수의도, 순수존재의 상태, 깨달음의 상태, 신이 임재하는 경지
  • 노력에 의하지 않고 Self2focus 상태에 몰입 --> Flow
  • 탁월한 성과, 기적, 초능력등 발생, 상황에 완전히 몰입, 무의식유능력, 신의 경지
  • 탁월함의 가능성이 실현 (G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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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우철(belizion) 벨리션

마음은 신체 어디(두뇌,심장,가슴,…) 존재하고 있을까?
마음은 우리의 신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우리가 꾸며낸 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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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대한 정의 

마음이란 인간이 생활하면서 접하는 모든 상황과 정보에 대한 내부적인 표상(IR: Internal Representation) 말한다. 조금 넓은 의미로는 내부적인 표상으로 인한 상태(심리적, 육체적)까지를 마음으로 정의할 있다. 
 

우리가 1초 동안 놓쳐버린 수 많은 것들

인간이
1초에 접하는 상황속의 정보의 양은 자그마치 1500만~2000만bit이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정보 중에서 자신이 중요하다는 정보로 대략 100bit만을 접수하게. (수치는 학자마다 다르다. 중요한 것은 대단히 많은 정보를 1초동안에 받아들이지만 그중 극소수의 정보만을 선별하여 처리한다는 것이다) 우리 뇌에는 Recticuler Activating System(세망신경계)라는 뇌가 가진 특수기능이 있는 데 이는 수많은 정보중에 무의식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 이외에는 접근을 차단하거나 정보를 왜곡하거나 생략해버리는 작용을 하여 뇌의 혼란 상태를 막고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만 감각하도록 뇌의 특수한 기능이다. 이기능으로 인하여 사람은 정보의 인식이전에 이미 무의식(인식)을 담당하는 뇌에서 정보를 처리(가공)한다.  1500만~2000만bit 정보 대다수를 생략하거나 왜곡하고 또는 일반화하여100bit (17 문자, 3개의 단어)정도의 정보를 인식하여 내부에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인식하여 남아있는 내부의 표상에 따라 배고프다 힘들다등의 신체적 상태  또는 희노애락등의 감정적, 심리적 상태등의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상태에 맞는 반응(신체/생리) 나아가 Action(행동) 취하게 되고 행동에 의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여러 정보중 배고품을 인식하게되고 배고픈 상태가되고 그에 따라 음식을 찾게 되고 더 나아가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식당으로 가게된다.


수 많은 정보중 어느 것을 내부의 표상으로 남기는가

중요한 점은 같은 상황과 정보를 접한다 해도 그 수많은 정보중에 어떤 선을 선택하거나 생략하거나 어떻게 왜곡시키는가에 따라 내부표상이 제각기 다른게 남게되며 그 내부 표상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것이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가정을 해서 설명을 해보면.
A라는 사람은 구타를 당한 이외에도 그와 관련된 수많은 정보가 있지만 모든 것을 생략하고나는 아프다. 그래서 무척 기분 나쁘다.라는 것을 내부적인 표상(IR: Internal Representation)으로 남기게 되는 경우이다. 이 경우 그는 분노와 억울함, 앙갚음 등의 상태가 된다.(이것이 마음이다.) 그리고 몸은 반응하게 된다. 아드레날린이 체내에서는 분비되고 얼굴이 뻘겋게 상기되고 분노로 인하여 극도로 흥분되는……. 급기야 이러한  흥분된 반응을 자제하지 때는 복수를 한다거나 싸움을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의 경우, 역시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구타를 당했다. 그런데 앞의 예와 다른 점은 A라는 사람은 구타를 당한 이외에도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상황과 정보 자신이 B라는 사람에게 못을 (예를 들면 사기를 ) 내부적인 표상으로 남긴다.
걸렸구나”, 그러면서 A라는 사람은 자신이 구타를 당해서 아프고 기분이 나쁜 그런 감정보다 는 자신이 B에게 못한 부분에 대하여 내부적 표상을 남기는 경우이다. 죄책감, 또는 위기모면,…등등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체의 반응은 죄의식으로 인하여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가 되어 결국 도망을 간다거나, 잘못함을 빌거나….

 이와 같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정보 무엇을 우리가 선택하고 어떻게 받아들여 내부표상(마음)으로 남기는 가하는 것이 우리가  중요시하는 외부 현실과 물질 세계 속에 여러 가지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이다.


But 세망신경계는 우리의 인식으로 컨트롤되지 않는다.

위의 글에 의해 우리는 세망신경계의 Filter(선별,왜곡,생략) 작용이 현실이라는 결과에 직접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세망신경계의 Filter작용을 컨트롤 하려고 하지만 이 세망신경계의 작용은 우리의 심장이 박동하는 것처럼 무의식속에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으로 하루 아침에 세망신경계의 작용을 조정할 수 는 없지만 이것도 훈련과 노력에 의해서 가능하다. (이것을 훈련하고 관리하는 방법에 대하여도 앞으로 설명하도록하겠다.)


변화, 성장, 습관의 개선, 중독증상,... 모든 것은 세망신경계의 작용과 관련이 있다.

변화가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는 지식이 완전히 나의 것이 되어 지속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고 고작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독증상은 왜 일어나며, 우리는 금연, 금주에 성공하기 어려운 것일까? 모든 것은 세망신경계가 이미 자동항법장치처럼 세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워 물게 되고 저녁때가 되면 몸에서 알콜을 땡기게 된다. 그리고 아침 기상을 1시간 일찍하려해도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다. 이미 는 무의식속의 세팅은 우리의 일시적인 의식(의지)만으로는 변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변화는 이론상으로 특정 수준의 자극과 반복에 의해서 변화되어진다. 개인의 자기게발, 변화와 성장, 모든 것의 성장과 변화의 원리이다. 이것이 바뀌었을 때 외부의 진정한 변화와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의 변화 없이 이루어진 현실에서의 성취와 변화는 일시적인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당신의 고질적인 단점, 컴플렉스, 알고도 못고치는 습관의 원인은 바로 이것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고 포기 하지 말자. 원인과 원리를 알면 반드시 변화와 성취할 수 있다.


마음의 원리를 형이상학적으로 가져가 본다면

모든 사람들은 생활속에서 자심의 감정을 콘트롤할 필요를 느낀다. 때로는 자신의 좋지 않은 감정표현법을 또는 더 낳은 인덕과 성품을 위해 훌륭한 감성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때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먹는가 하는 것과 관련된다. 어떤 마음을 갖는가? 이것은 역시 우리가 세망신경계를 어떻게 컨트롤하여 변화시키는 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세망신경계의 선택에 따라 우리는 주어지는 상황과 정보에 상관 없이 우리의 의지에 의해 얼마든지 상황과 반응 결과를 선택할 수 있다. 즉 모든 상황에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자신의 잠재력을 탁월하게 활용하는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고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의 가장 탁월한 도구일 것이다.

 
우리는
마음을 나라고 생각할 때, 인간 본연의 완전한 순수의식(Pure Awareness,Real Self)을 망각하고 ego가 자신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이와 같이 느끼는 감정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게 될때 우리는 천부적으로 부여 받은 완벽한 존재임을 깨우쳐주는 우리의 순수의식은 ego의 장막에 가리워져 우리는 순수의식으로 부터의 분리를 일으키게 된다. 순수의식과의 분리가 는 우리에게 부족감과 욕망등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다. 즉 순수의식의 상태에서 벗어나 끝없는 두려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생의 배움의 여행이다.
보편화 된 사람들은 Real seif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ego(마음)이 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ego의 상태 즉 모든 감정,
희로애락의 감정이 나 자신이되어 삶을 지배하게 만들도록 허락한다..
우리는 너무도 완벽한 본질적 자아(Real Self)를 잊은 채 ego 속고 있는 것이다.

삶은 그
 완전한 순수의식(Real Self) 찾아가는 과정, 여행인 것이다.
여정의 종착점은 과연 어디일까? 
이글을 읽는 모든이들에게 질문한다.
여러분이 삶의 여정속에 에고의 장막을 벗고 순수의식의 상태를 회복했을 때 여러분의 최종목적지는 과연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 삶의 종착점, 삶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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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담 : 나무 한 그루가 자네가 가야 하는 길을 막고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황진이 : 나무를 피해 비껴갈 것입니다.

서화담 : 비바람이 앞길을 막는 다면 어찌하겠는가?

황진이 : 비바람이 멎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서화담 : 자네를 막고 있는 그것들에게 왜 화를 내지 않는가?

황진이 : 자연의 현상임을 어찌하겠습니까?

서화담 : 자연이 너의 마음을 흔들지 않는 것은 자연에겐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너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삶에 연연하는 너의 이기적인 마음이다.

황진이 : 제가 그 마음을 버린다면 세상을 알 수 있습니까..?

서화담 : 세상 모두가 너와 하나임을 깨달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진리요 너의 참 모습이다.

                                                                                             <영화 “황진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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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Emotional Quotient)

감성지수 또는 감정적 지능지수라고도 한다. 지능지수(IQ)와는 질이 다른 지능으로, 마음의 지능지수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 저술가인 대니얼 골맨(D.Goleman)이 저서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에 제시하면서 대중화되었다.


내용으로는 
 

첫째, 자신의 진정한 기분을 자각하여 이를 존중하고 진심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

둘째, 충동을 자제하고 불안이나 분노와 같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

셋째, 목표 추구에 실패했을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격려할 수 있는 능력,

넷째,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공감능력,

다섯째, 집단 내에서 조화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 등을 들 수 있다.

 

EQ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한다. EQ가 높은 사람은 갈등 상황을 만났을 때 그 상황을 분석하고 자신의 처지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감정적 대응을 자제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적인 이해를 나타낸다.

골맨은 이런 태도를 '정서면에서의 지성'이라 하고 그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의 교육학자들도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지 못하는 아이가 학교를 중퇴할 확률이 평균보다 8배나 높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유아기부터 EQ를 키우는 감정교육을 실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Two equestrian riders, girls on horseback, in low tide reflections on serene Morro Strand State Beach
Two equestrian riders, girls on horseback, in low tide reflections on serene Morro Strand State Beach by mikebaird 저작자 표시


SQ (Spiritual Quotient)

IQ(지능지수) EQ(감성지수)에 대응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영성지수라고도 한다. 의미와 가치의 문제를 다루고 해결하기 위한 지능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영국의 옥스퍼드 브룩스대학교 교수인 도너 조하와 정신과 의사 이언 마셜이 처음 사용하였다.

이들은 IQ EQ가 특정한 환경의 테두리 안에서 적절하게 행동하게 하는 일종의 적응 능력인 데 비해, SQ는 규칙이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창조적 능력으로서 IQ EQ의 토대가 되는 인간 고유의 지능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에 따르면 SQ는 기존의 가치를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적으로 발견하는 지능이기 때문에 IQ EQ가 나빠 학습능력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SQ가 좋으면 탁월한 리더십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나갈 수 있다. 종교인최고경영자(CEO)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인간에게 제3의 지능이 있다는 신경학적 증거로는 1990년대 오스트리아의 신경학자 볼프 싱어의 연구가 거론된다. 싱어는 뉴런 다발이 진동하면서 경험을 통합하고 의미를 갖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뇌신경 조직에는 IQ의 기초가 되는 순차적 신경 연결과 EQ의 기초가 되는 신경망 조직만 있는 것이 아니라, SQ의 기초가 되는 신경 진동 과정도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인간은 신경 진동을 통해서 경험의 의미와 가치를 파악하고, 삶의 목적을 결정할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조하는 이 같은 증거를 토대로 IQ, EQ와 마찬가지로 SQ도 훈련과 학습을 통해 높일 수 있으며 측정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유연한 사고와 확고한 자기 인식을 갖고 고통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사람, 비전과 가치에서 영감을 얻고 다양성 사이의 연관을 파악하며 인습에 역행해서 행동할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 SQ가 높다.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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